<식량> 적진후방에 침투하는 장병에 대한 생존성 보장을 위한 식량보급은 2주일(14일)분의 미숫가루와 고추장, 소금이 전부였다.
<피복> 피복은 인민군 병사의 동복 모양의 국방색 누비바지와 저고리, 누빈방한모, 방한(면제품)농구화 1, 양말 두켤레 장교에게는 가죽으로 된 어깨띠가 있는 문서가방이 지급 되었고, 인민군 행색의 망태모양의 배낭, 수저, 양은식기 2개, 장수연 담배 1봉지
<무기> 무기는 아식(소련제) 소총, 일부는 99식(일제) 소총, 기마단총과 45구경권총(채명신 중령), 수류탄 약간, 실탄 30~50발/개인별.
<통신장비> SCR 300 무전기 2대(산간지역 통달거리는 2~3km 정도)

대공표지판 1조
위 장비와 보급으로 미루어, 완벽할 만큼 북한군 행색으로 위장하여 제1진 363명이란 대병력을 현역 육군중령의 직접 진두지휘하에 적진 후방지역으로 침투 한 것은 건국이래 최초의 작전이였다.
그들의 장비·보급으로 미루어 14일이전까지 작전을 끝내고 귀환해야 했으나 그들에게 부과된 작전명령은 보급의 현지조달을 통해, 계속작전하게 하였으므로 생존성의 보장은 전혀 없었는 바, 결국 백골병단은 14일분의 비상식략으로 60여일간의 전투를 감행하고 1951.3.24~25일사이에 굶고 허기진 동·아사자 120여명의 비전투 손실을 입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