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9.28. 서울 수복후, 남침 했던 인민군 패잔병이 북한 전선사령관 김책(金策)의 명령으로 유격부대로 개편하자, 유엔군사령부는 저들에 대응한 유격전을 감행하기에는 피부, 언어, 지형 등을 이유로 유격전을 수행할수 없다는 고충을 육군 수뇌부에 지적하자, 육군본부 정보국은 육군보충대에 대기중인 장정(壯丁) 중에서 유격 특수전을 수행 할만한 신체건강하고 사상이 확고한 결사대원을 징병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이때, 육군본부 정보국은 육군 보충대에 수용중인 사상이 건전하고 신체건강한 의용경찰관, 철도경찰, 대학생과 고등학교 학생, 현역 군인으로 낙오된 병사등에서 충원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집행하였다.

<병력 자원> 의용경찰관 이란 : 1950.10.1. 우리 군이 38도선을 돌파하고, 북진을 계속하여 1950.10.16. 적의 수도 평양을 함락 하자, 북한 지역의 치안확보를 위하고, 남한 지역인 지리산·태백산 지구에서 준동하는 적 2개 군단 급 정규군이 게릴라부대로 개편하여, 무고한 양민의 학살과 식량의 약탈 등을 자행하고 있던때 였으므로 이들을 토벌할 치안병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경기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경상북도, 강원도의 각 경찰서마다 30명이상 100명상당을 모집하여 1950년 10월부터 11월하순까지 치안확보를위한 훈련을 실시하고, 북한의 수복지역에 파견하려던 중, 1950.11.26 중공군 6개 군단 상당의 대병력이 인해전술과 함께 기습 남침하자, 정부는 1950년 12월 21일 만 17세 이상 30세까지의 청·장년 모두를 동원할 국민 총 동원령을 이승만 대통령이 선포하고, 한편으로는 국민 방위군 설치법을 같은날 공포 하였다.

<선병 및 훈련> 북한의 실지(失地)회복과 치안확보가 불가능해지자 이들 의용경찰 등 모두를 대구소재 육군보충대에 입소(대) 시킨 병력자원은 6,000명 이상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들중에서 1차로 710명, 2차로 300여명을 특수작전을 수행할 결사대 요원으로 선발하여 육군정보학교에 입대(교)시켜, 유격 특수전을 위한 「무장첩보 및 유격전에 필요한 교육」을 실시하고, 각각 작전명령에 따라 적후방에 침투시켜, 적의 게릴라화 된 부대에 대응한 특수부대로 활용하기로 하였다.